[남선우] 알피니즘을 다시 생각한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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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발표문(2009년 5월 14일)
알피니즘이란 무엇인가
남선우(한국등산연구소장)
오늘날 100여 개 국적의 등반가들이 전 세계 7대륙에 걸친 광범위한 산악지대에서 활발한 등반을 펼치고 있다. 지구 최고봉 에베레스트만 보더라도 1953년 이래 2007년까지 무려 3,026명이 그 꼭짓점에 올랐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나라 중 네팔, 미국, 일본, 중국, 영국, 인도, 러시아, 스페인, 한국 순으로 많은 등정자를 배출했고 1명 이상 등정자를 보유한 나라가 91개국에 달한다. 이런 에베레스트 등정의 이면에는 인간의 끝없는 탐구욕과 한계 극복의 의지가 숨어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등반가들 모두가 같은 동기를 가지고 산에 오르고 있을까? 유명한 이탈리아 등산가 귀도 레이(1861~1935)는 “등산은 알피니스트의 수만큼 다양하다”라고 했다. 이 말은 등산의 형식과 내용이 산에 오르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등반은 일종의 스포츠며 자기 과시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 등반은 철학적 행위며,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등반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법’(조지 휜치)이고, 그보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등반은 자기를 구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장 프랑코(1914~1973)는 이를 종합하여 “등산은 스포츠요 탈출이며 정열이고, 일종의 종교”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의 등반가든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산엘 왜 가느냐?”다.
등반행위는 외적으로는 격렬한 육체노동과 위험을 수반한 행위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은 내면적이며 주관적인 세계다. 스스로 험한 산을 찾아 올라가서는 다시 살아 내려오려고 투혼을 불사르는 산악인들을 보며 일반인들은 어떤 역설과 모순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산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요,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존재론적으로 산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그 질문은 마치 ‘왜 사느냐“는 질문처럼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은 등반가 스스로 자신에게 수없이 던지는 질문이며 그 해답을 찾으려 또다시 산으로 향한다. 이렇듯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알피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등반가들이 공유하고 계승해 온 정신적 소득이 무엇이고 그 본질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1. 알피니즘의 정의
눈과 얼음에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
영한사전에 보면 ‘알피니즘(Alpinism)’이란 단어가 있다. ‘알프스 등산’, 혹은 ‘일반적으로 고도가 높은 등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국에서 발행된 등산백과사전(Encyclopedia of Mountaineering, Penguin Books)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눈과 얼음에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알피니즘이란 알프스의 봉우리를 순수하게 등반을 목적으로 오르는 새로운 사상’이라고 했다.
여기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알프스 정도의 높이를 가진 고산’이란 바로 산과 사람 사이에 펼쳐진 장애물, 즉 빙하, 바위와 눈, 그리고 저산소 등의 조건을 갖춘 산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풀이하면 알피니즘은 자연적인 위험이 있는 산을 오르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요, 그런 곤란함, 위험의 극복을 하나의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산의 위험(암벽, 빙벽, 고도 등)을 극복하며 오르는 행위와 그 정신
따라서 알피니즘은 알프스에서 행하는 등반뿐만 아니라 위험이 있는 산이라면 어디서든 실천할 수 있다. 프랑스의 등산가 폴 베시에르가 그의 책 <Alpinism>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산에 오르는 것을 프랑스 말로 ‘알피니즘’이라고 하지만 배타적인 사람들이 강조하는 표현과 달리 그것은 알프스를 오른다는 좁은 뜻이 아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기원이 있을 뿐 넓게 일반적이다. 전문적인 산악인들은 피레네에 오르면 피레네이즘(Pyreneism), 히말라야는 히말라이즘(Himalaism), 안데스를 안디니즘(Andinism)이라 할는지 모르나 요는 산을 오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빙하도, 만년설도, 저산소증을 느낄만한 고도가 없지만, 설악산에는 거센 눈보라 속에 감춰진 천화대가, 혹한 속의 토왕성 빙폭이 있다. 서울 북쪽에는 인수봉과 선인봉이 보통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산에서도 알피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무수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산의 위험은 무엇을 말하는가. 눈과 얼음, 고도, 폭풍설, 눈사태, 낙석, 낙뢰…. 이런 것들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조건이다. 또한, 동료의 부상, 추락, 고산병 등 인위적인 위험도 발생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불안전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우리는 ‘불확실성’이라고 부른다. '불확실성'은 등반가들이 추구하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2. 알피니즘의 배경과 기원
인간이 산을 도전과 극복의 대상으로 삼은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 이전에 알프스는 악마가 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스위스의 피라투스(Pilatus,2132m) 산은 루체른(Lucerne) 시의회가 수 세기 동안 법령으로 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리스도를 처형한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망령이 이곳에 정착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초에는 ‘저주받은 산’ 몽블랑(4,807m)의 빙하가 마을로 덮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앙시(Annecy)의 주교를 샤모니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설과 자연적인 위협들은 자연히 인간의 알프스로의 접근을 방해했다. 유럽 사람들의 알프스와의 단절은 170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알피니즘의 배경
18세기 초 낭만주의(Romanticism)와 인본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문학가 예술가들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면서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끌게 되었다. 고산지대의 전경을 흥미롭게 기술한 루소와 워즈워스 등 낭만주의 시인들은 사람들을 부추겨 알프스로 향하게 했다.
또한, 지질학자, 식물학자, 그리고 빙하를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들의 탐구욕이 그동안 인간과 단절되었던 알프스의 고지대에 발길을 들여놓게 했다. 지구에 대한 관념적 이해에서 벗어나 지구의 갖가지 자연 현상에 대한 실증적 관찰, 실험을 위해 알프스의 고지대로 접근하게 되었다.
사회적 배경으로는 봉건주의의 몰락과 절대주의의 붕괴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때였다. 이들 근대시민에게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고 자연의 극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찾으려는 욕구가 분출되었으며 그 구체적인 대상이 바로 알프스였다.
알피니즘의 기원
1760년, 갓 20세를 넘긴 청년 소쉬르(Horace Benedict de Saussure)는 브레방 언덕에서 몽블랑(4,807m)을 관찰한 후 등정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고 과학적인 가능성의 연구와 준비를 시작한다. 자연과학자였던 그는 당시로써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그것까지도 연구대상으로 검토를 시작한다.
그의 몽블랑을 오르기 위한 연구와 실험은 늘 새로운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히며 20년의 세월이 흐른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실험을 통해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도 그는 확실한 등정 가능성을 찾지 못한다. 가이드들과 여러 해 동안 여러 방향으로 수많은 등반을 시도했지만 해가 지면 더는 진행을 못 하고 되돌아 내려오곤 했다. 결국, 처음 샤모니를 찾은 지 2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소쉬르는 몽블랑 등정의 꿈을 포기하게 된다.
이 꿈은 다음 해인 1786년 8월 8일에 실현된다. 샤모니 태생 미셸 갸브리엘 파카드(Michel Gabriel Paccard)와 수정채취업자 쟉 발마와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샤모니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과 발이 추위로 감각을 잃어버릴 무렵 그들은 마침내 전인미답의 정상에 올랐다. 소쉬르가 몽블랑을 오르려는 계획을 세운 지 26년 만의 일이다. 다음 해 소쉬르 자신도 기어코 몽블랑을 올라 결국 그의 길고도 불확실한 꿈을 실현되었다.
미셸 파카드와 쟉 발마, 그리고 소쉬르가 펼친 일련의 몽블랑 등정은 알프스가 더 경외와 공포의 장소가 아니라 도전과 극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이로부터 시작된 근대등산은 알프스 전역으로 확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알피니즘의 기원이 되었다.
3. 알피니즘과 등반성
알피니즘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본질을 지키는 것을 당연한 과제로 삼는다. 음악은 음악성을, 문학은 문학성을 평가하듯 등반행위도 등반성을 추구한다. 등반이 본래 지향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인가. 등정한 산의 높이, 수집한 정상의 수가 등반성의 평가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알피니즘의 주관적인 행위를 경기스포츠의 그것처럼 계량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성(uncertainty)
알피니즘은 산의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과 극복을 전제로 한다. 불확실성은 불안전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소쉬르의 몽블랑 등정이 빛을 발하는 것은 전인미답의 불확실성을 향해 그가 26년 펼친 집념과 열정 때문이다.
오늘날 각종 편의성을 동원해 불확실성을 극소화 시키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그러나 탐험에서 온갖 안전장치를 동원하면 할수록 탐험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종국에는 일종의 ‘도보여행’이 되고 말 듯이, 알피니즘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면 등반성도 사라진다. ‘진정한 등산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라는 명언은 기존의 길을 벗어나 불확실하지만 자기만의 길(방식)을 찾아 오를 때 진정한 등반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등반성은 한 등반가가 극복한 불확실성의 내용을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다. 각종 편의성을 동원해 얻은, 겉으로 드러난 ‘등정’의 결과만으로 등반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곤란성(difficulty)
등반가가 산의 다양한 자연조건과 맞서려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의 정도가 있다. 장비와 기술의 발달과 등반 체력의 향상은 과거보다 현저히 그 곤란성의 정도를 떨어트렸다. ‘에베레스트가 낮아졌다’라는 말은 오늘날 경량화된 산소통과 고정로프, 그리고 친절한 셰르파에 이끌려 오르는 사람들이 겪을 곤란성이 과거보다 현저히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곤란성은 상대적 개념이다. 체력과 기술이 열악한 사람과 경험 많은 등반가가 경험하게 될 곤란성은 같은 산, 같은 루트, 같은 시간 속에서도 각기 다르다. 그래서 한 등반가가 산에서 극복한 곤란성을 다른 등반가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곤란성은 등반가 자신이 산과 맺는 일차적인 관계로부터 성립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극도의 불확실성과 곤란성을 극복한 6천 미터급 거벽 등반가들이 8천 미터급 등정자들보다 저평가되는 현실은 곤란성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의 고도는 등반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절대 충분조건이 아니다. 고도(Altitude)보다는 산의 불확실성과 곤란성에 솔직하게 맞서는 태도(Attitude)가 더 중요하다.
창의성(creativity)
하나의 산을 놓고 오를 수 있는 루트와 선택할 방법은 많다. 알피니즘의 본질이 불확실성과 곤란성의 극복에 있는 한, 새로운 루트와 새로운 방식의 추구는 필연적인데 여기서 창의성이 요구된다. 창의성은 등로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며 현대 알피니즘의 등반영역을 무한히 넓혀준 정신적 토대다. 라인홀트 메스너(1944~)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단지 높은 산을, 여러 개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때로는 무산소로,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아무도 오르지 않았던 루트로 산을 오르며 끊임없이 창조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등반가는 산이라는 화폭에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원화의 주인공으로 비유된다.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한 다음 등반가의 그림은 모사(模寫)에 지나지 않는다. 등정주의 등반가는 언제나 ‘남의 정상’을 오르지만, 창조적 등반가는 언제나 ‘자신의 정상’을 오르는 것이다.
4. 등정주의와 등로주의
1886년 에드워드 윔퍼 일행에 의해 마터호른(4478m)이 등정 되면서 알프스의 4천 미터급 미답봉은 더 오를 곳이 없어졌다. 그 무렵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Albert Frederick Mummery;1855~1895) 가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며 보다(more) 변형된(variation) 루트를 찾아 나섰다. 이른바 머메리즘(Mummerism)이 여기서 탄생한다. 등정이라는 결과보다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이 사조를 우리는 등로주의(登路主義)라고 부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 등정에 집착하는 등반을 꼬집어 등정주의(登頂主義)라고 부르게 되었다.
알피니즘의 역사는 한 마디로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로의 변천사다. 히말라야에서도 마찬가지다. 1964년 중국의 대규모 원정대에 의해 마지막 8천 미터급 봉우리 시샤팡마(8,027m)마저 첫 등정 되자 등반가들은 8천 미터 고소에서 새길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안나푸르나 남벽,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잇따라 새길이 뚫렸다. 여기서 등로주의의 로(路)는 단지 ‘루트(route)’가 아니라 방식(way)의 의미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단독등정, 동계등정 등으로 이어졌다. 이제 등로주의는 단순히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
여기서 등정주의와 등로주의에 대한 박범신 작가의 칼럼을 소개한다. 등정주의에 빠져있는 우리 산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악인들이 고산에 오르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첫째는 이른바 극지법 등반. 히말라야 같은 큰 산을 등반하기 위해 본거지를 설치하고 차례로 캠프를 세우면서 정상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흔히 등정주의 등반이라고 한다. 극지법 등반은 높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므로 그 목표를 위해 방대한 장비와 물자, 그리고 많은 전문 인력들이 동원된다. 이 등반에서 가치의 중심은 등반 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얼마나 높이 오르는가 하는 최종목표의 높이 서열에 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다 높은 곳을 정복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등반방법으로서,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이후 세계 산악계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전근대적 등반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알파인 스타일. 등로주의 등반이라고 명명되기도 하는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에서 가치의 중심은 최종 높이가 아니라 등반 과정에 있다. 일반적인 코스보다 더 위험한 새로운 코스를 선택해 타인이나 장비의 도움을 최소화해서 오로지 오르는 사람의 고유한 판단과 감각에 의존해 정상을 오르는 실존주의적 등반방법이다. 오늘날 세계 등반계의 추세는 단연코 이 등로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삶의 길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자본주의적 무한 경쟁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세상에서, 우리가 그 경쟁의 게임 속으로 뛰어들 때 먼저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등정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것 없이 오직 높이의 최고를 겨냥할 것인가. 아니면 남과 상대적으로 경쟁해가는 높이 서열에 대한 목표는 차선으로 미뤄 두고, 그것보다 먼저 주체의 고유성을 따라 내가 원하는 '봉우리'를 찾아 그것을 내 에너지와 판단력에 따라 오르고, 그런 다음 그것을 '내 봉우리'로 삼는 것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선택은 물론 각자의 몫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 모두가 각개약진으로 뛰고 달렸던 삶의 산행에서 보편적으로 선택했던 방법은 단연코 극지법, 곧 등정주의 등반방법이었다.
일단 높이에 따른 '정상'만을 염두에 두고 오로지 '일등'만을 향해 달렸던 이 전근대적인 등산 방법은, 개발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아이로니컬하게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백성이었던 우리 모두의 가장 보편적인 삶의 방법으로 차용됐다.
이 방법의 삶에선 오직 매출목표나 직위의 서열 같은 외형적인 가치만이 존중됐고, 그래서 게임의 룰은 무화(無化)되기 일쑤였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높이 올라도 더,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일 뿐, 만족감에 이르기는 어렵다.
삶은 스포츠와 다르다. 바구니에 공을 집어넣는 숫자의 서열만으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식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다양성과 위대성을 송두리째 부정하거나 한정시키는 결과에 닿을 뿐이다. 어떤 높이에 도달하든지 간에 인간은 내면 가치에 따른 만족감을 수반하지 않는 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의 정상'이다. 삶에서, 모든 이가 다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는 없다. 세계엔 얼마나 봉우리가 많은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내 본원적 지향에 따라 '나의 정상'을 찾아내는 것이 만족감을 얻는 일차적 관문일 것이고, 그다음엔 그것을 향한 나만의 길을 찾아내고 오르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이차적 관문일 것이다.>
5. 알피니즘은 무상의 행위인가?
오늘날 한국의 고산 등정자들은 사회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야구나 축구, 골프선수들이 받는 부러움과는 다른 차원의 관심이다. 스포츠 선수에 대해 부러움은 겉에 드러난 것에 있으나, 등반가에 대한 존경은 인격 내면을 향하고 있다.
고산 등반가들이 이처럼 존경을 받게 된 이유는 어떤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인간성 실현을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리라. 이럴 때 일찍이 프랑스의 리오넬 테레이(1921~1985)가 말한 ‘무상의 행위’로서의 알피니즘은 제빛을 발한다.
한국의 등반가들이 세계 고봉에서 펼친 활약상은 대중 매체에 의해 국민에게 전달되어 왔다. 수 없는 피침의 역사를 살아온 한국민들에게 때로는 개척정신의 상징으로, 때론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인 영웅적 성과로 소개되었다.
어떤 경우는 매스컴의 ‘성공적인 등반기’를 위해 기획되기도 하면서 ‘도전과 극복’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관련 산업들과 맞물려 성장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는 상업주의로 무장된 매스컴과 그 매스컴이 계량화한 알피니즘으로 학습된 시청자들과 그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등반가들이 악순환의 고리를 엮어가고 있다. 불확실성은 어디로 가고 온갖 편의성을 동원한 원정대들이 상업 미디어들의 식상한 응원가를 들으며 오르고 있다. 등로주의를 외치며 순수 알피니즘을 고수하던 등반가들은 이제 더 알피니즘은 무상의 행위일 수 없다고 박탈감에 빠졌다.
요즘과 같은 물질문명 사회에서 행위 뒤에 주어지는 정신적, 물질적 보상 효과는 알피니즘을 지속할 수 있는 순기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 뒤에 따르는 보상과 처음부터 보상을 목적으로 한 것은 명백하게 다르다. 알피니즘이 보상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더 존경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알피니즘의 보상 효과에 대한 착시현상은 알피니즘을 상업 스포츠로 전락시키는 역기능으로 작용했다.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바로 알피니즘 본래의 정신과 규범을 잘 못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고도화되더라도 등반가들이 그들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는 ‘무상의 행위’일 때 생명력을 가진다. 무엇보다 알피니즘의 진정한 보상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에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바꿀 수 없는, 산이 등반가에게 주는 최고의 보상이다.
맺는말
우리가 알피니즘을 ‘불확실성과 맞서서 얻는 깨달음’이라고 정의할 때 진정한 등반가란 ‘산의 불확실성과 곤란성을 극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기인식의 기쁨을 얻는 사람’이다. 그래서 왜 산에 오르는가 하는 질문에 등반가는 ‘산’이라는 화폭에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답해야 한다. 한편 알피니즘은 불확실한 삶을 헤쳐나가는 한 방법이다. 우리 삶이 불확실하듯 알피니즘의 세계도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 알피니즘은 불확실한 인생에서 무엇을 극복하고, 무엇에 순응하며, 또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산으로 가는 길은 인생에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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